제목 4번..세 학생 ; 메리놀회 (태의선 로마노신부님) 영문편지번역
작성자 방지거
이메일
홈페이지 IP 주소 36.38.69.75
조회수 998 등록일 2016/12/20 (23:42)
People I Love : Number 4



                                                                                 THREE STUDENTS



He was a young American soldier, eyes full of hope, one of “McNamara’s 40,000,” the boys who couldn’t read, but were conscripted into the Viet Nam Era Army anyway. His Chaplain had sent him to me. “There’s just one thing I want out of my Army service,” he explained. “ I want to learn to read.” I wanted to teach him, but just couldn’t take so many hours from my missionary work and my own struggle to learn Korean. He later told me he’d found a buddy, a fellow G. I. who volunteered to teach him. I hope he did. He deserved to learn.



I met the 17 year old shoveling chicken maure in a home for “ mixed bloods,” the abandoned children of American soldiers and Korean girls, citizens of neither the US nor of Korea. Hos hair was red, his cheeks creamy white and freckled. It seemed strange that he was speaking Korean. But his Irish eyes shone with pride looked about me, “I’m learning the chicken raising business.” I looked about me. This boy was shoveling chicken manure nothing else! My heart still aches for him wherever he is.



“Father, I’d like to invite you to dinner at the NCO Clob tomorrow. I’m having a little celebration.” The gray haired Master Sergent had visited me frequently on his off-duty time. He’d seen many years of Army service and had fought in three wars. His shoulders unconsciously straightened with pride as he explained, “It’s taken me almost a full twenty years. But I’ve achieved my life time dream. I’ve gotten my School Diploma !”



I think of my own Doctorate in Theology and my two Master’s Degrees, all achieved at someone else’s expense and while someone else supported me as I studied.


제목 ;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순서 4번 ; 세 학생



  그는 젊은 미군병사 였는데, 희망에 찬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글도 모르는 “McNamara”의 4만 명 청년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찌 되었건 베트남방위군에 징집되었습니다. 그의 군목은 그를 제게로 보냈습니다. 그가 설명했습니다. “제가 군대에서 배워 나가고 싶은 것이 한가지가 있습니다.” “저는 글을 읽는걸 배우고 싶습니다.” 저는 그를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저는 선교하는 일과 한국말을 배우려고 몸부림치느라 많은 시간을 할애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나중에 제게 말했습니다. 그가 형제모임을 만들었다는 얘기였습니다. 가족적인 G.I이었는데 자원하여 그를 가르치려 했던 사람들 모임이었습니다. 저는 그가 그렇게 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는 충분히 배울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미국사람도 한국사람도 아닌, 미군병사와 한국소녀사이에 버려진 아이들, “혼혈아”를 돌보는 집에서 17살 되었을 때 만났는데, 닭 비료를 삽질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머리는 적색이었고 뺨에는 하얀 크림이 묻어 있었고 주근깨가 있었습니다. 그가 한국말을 하는 것이 이상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저에게 말 할 때마다 그의 아일랜드눈은 자부심으로 빛이 났습니다. “저는 닭을 키우는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주변을 둘러 보았습니다. 이 소년은 닭 비료를 삽질하고 있었고 그일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저의 마음은 여전히 그가 어디에 있던지 그를 생각하면 쓰리고 아프답니다.



  “신부님(Father), 제가 내일 NCO클럽에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저에게 조그만 축하식이 있거든요.”  그 반쯤 흰머리가 된 주인하사관은 그가 쉬는 시간마다 저를 주기적으로 방문했습니다. 그는 여러해 동안 군대생활을 했는데 세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의 어깨는 그가 설명했던 것처럼 자부심으로 무의식적으로 똑바른 자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거의 꼬박 12년 걸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인생의 꿈을 이뤘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졸업장을 받았거든요.”



  저는 제 신학박사학위가 두주인(主人)의 학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공부하는 동안에, 누군가가 저를 지원해 주었던 것같이 모든 것은 누군가의 경비지원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다음글 이전글 목록 새글 수정 답변 삭제